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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13:14

꿈이 아닌 현실의 그림_20세기 라틴아메리카거장전 관람기


인권재단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1~12월호에 실린 글이다. 원고지 40매라는 긴 글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나름 고생해서 글을 썼다. 내 이름을 달고 인쇄매체에 실린 첫번째 글(번역제외). 두 번 전시를 보고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글을 썼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이기에 앞서 가장 먼저 스스로를 닦아세우는 공부이자 점검이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1~12호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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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현실의 그림
- 20세기 라틴아메리카거장전 관람기



맛있는 커피가 생각날 때 즐겨 찾는 커피집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생 커피 알을 들여와서(그것도 공정무역으로!) 볶은 후 정성스럽게 천천히 커피를 내려주는 곳이다. 들르는 횟수가 늘어나자 좋아하는 커피가 생겼다. 너무나도 유명한 콜롬비아 수프리모는 물론이고 브라질, 온두라스, 볼리비아, 페루, 멕시코…. 먼 길을 날아온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언젠가는 그곳으로 가보겠다고 아련한 마음을 품어보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달리던 바로 그 땅 말이다. 그 땅의 현실은 저만치 밀어둔 채 수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그래서 내 여행자의 꿈을 채워줄 그곳을 살짝 떠올려보는 것이다.



콜롬비아 수프리모의 진한 향기 혹은 좌파 불한당의 나라


그렇다. 라틴 아메리카는 여행자들의 마지막 로망이다. 지구본을 찾아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와 지구 중심을 관통하여 선을 그어보라. 아르헨티나 어디쯤에 가닿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 곳. 이곳이 가을에서 겨울로 몸을 움츠릴 때 그곳은 봄에서 여름으로 뜨거운 해를 피워 올린다. 이곳에 선 우리가 지구를 딛고 서있을 때 그곳의 사람들은 지구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다. 탱고와 살사의 땅, 노래와 춤의 땅 그리고 아즈텍, 잉카, 마야 등 수수께끼 같은 고대문명이 꽃을 피웠던 땅. 멀어서 더욱 꿈을 꾸게 하는 그곳.


여기까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낭만주의자다. 하지만 지금 라틴 아메리카는 우리와 ‘현실’ 속에서 그물을 엮어가고 있다. 4년 전 칠레와의 FTA로 슈퍼나 마트에 가면 칠레산 포도, 키위, 돼지고기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뿐인가? 올 봄 칠레 와인 수입량이 와인의 나라 프랑스를 제치고 처음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은 1960년대만 해도 한국 보다 경제 사정이 나았는데 지금은 현저히 달라진 한국의 경제적 위상 앞에서 새로운 역할 모델을 따라 IT분야 등에서 한국 배우기에 열심이며, 한국 경제인들은 핸드폰, 자동자, 가전제품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으로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가하면 신문에는 종종 남미 좌파 3인방이라 불리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그리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기사가 국제란을 채운다. 보수신문은 그들에게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서 지지자들에게 불한당의 나라, 반역의 나라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며 진보파들은 2006년 4월 쿠바,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정상이 그동안 미국식 FTA가 대기업 및 다국적 기업의 이윤에 봉사하면서 오히려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졌기에 새로운 방식의 협정으로 체결한 ‘민중무역협정(People’s Trade Treaty)’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와해되는 것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혁명을 간직한 반미 국가 쿠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넘어서려는 남미 국가들은 빈곤을 넘어서 새로운 도약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낭만주의자의 꿈이든, 21세기의 새로운 방식의 혁명 부활이든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라틴 아메리카를 꿈이 아니라 현실로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라틴 아메리카 혹은 중남미


도심 속의 덕수궁으로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을 찾아가면서 ‘라틴 아메리카가 정확히 어느 곳이지?’ ‘왜 그곳을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를까?’ 질문을 던져보았다. 갑자기 머쓱해지면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라틴 음악, 라틴 댄스… 허리가 잘록한 아메리카 지도가 떠오르지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남아메리카를 지칭하는 걸까? 세기의 연인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전시에 초대되었다니 멕시코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라틴 아메리카는 멕시코와 그 남부 아메리카 대륙 및 카리브 제도를 포함한다. 이때 머리에 붙은 ‘라틴’은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가 모두 고대 로마어(語)인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라틴 유럽과 문화적인 근친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영어를 주로 사용하며 영국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앵글로 아메리카 즉 미국·캐나다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어쨌든 라틴 아메리카라는 말에는 이들 지역이 라틴어를 쓰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어두운 과거가 스며있다. 일본령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한국, 타이완, 만주지역, 필리핀 등이 묶인다면 유쾌한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지역이 리듬감 있고 화려한, 열정이 담긴 음악과 춤을 가꾸었기에 라틴 아메리카라는 말에서 식민지의 그늘이 짙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라틴 아메리카가 문화적으로 유용한 용어지만 좀 더 중립적인 용어를 원한다면 ‘중남미’라는 지리적 용어를 쓸 수도 있다. 20세기 중남미 거장전!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 전시의 한계와 장점을 톺아보자. 만약 라틴 아메리카의 한 구석 콜롬비아에서 <20세기 아시아 거장전>이 열린다고 하자. 아시아 16개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모여들어 전시가 개막했다면 어떤 느낌일까. 분명한 상이 그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든 아시아든 20세기가 단일한 빛깔의 한 시대가 아닐뿐더러 각 나라마다 소시기마다 각기 다른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을 가질 테고 작품들의 의미와 형상도 다 제각각 일 터이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도 ‘20세기’ ‘라틴’ ‘거장’이라는 공통 키워드, 즉 커다랗고 막연한 틀 안에서 개최되는 전시이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본령을 충분히 맛보리라는 큰 기대를 품는다면 오히려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전시를 방학이면 열리는 여타의 블록버스터 전시와 동일하게 내쳐둘 수는 없다. 모네, 밀레, 샤갈, 렘브란트 등등 서유럽 거장의 이름을 걸고 길게 줄을 선 관객의 모습이 감동의 함량을 보증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디어가 소개하는 전시들과 이 전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20세기 미술의 본령이 서유럽과 미국에 있기에 이 우월한 미술로부터 예술혼을 배워야 한다는 뿌리 깊은 사대적인 생각을 교정하는 한 계기로서 이 전시가 갖는 작지 않은 의미가 있을 터이다. 세계 미술에 대한 시야를 중남미까지 펼쳐보면 그곳에는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실험한 작가들, 인디오 전통 부흥 운동(인디헤니스모)을 통해 토착 문화 요소를 현대 미술에 담고자 한 작품, 내용이 제거된 형식상의 예술지상주의가 아니라 사람들과 당대를 소통하고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미술품이 있다. 이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면, 당장 우리의 눈과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는 그림들이 전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비판의 화살을 쉽게 쏘아대기는 어렵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3대 거장


전시 주제는 석조전의 네 방에 맞추어 4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방은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제로 한 방이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독특한 개성이 가장 강하게 풍기는 곳이다. 대체로 20세기 전반기의 작품이 많은데 그럼에도 밝은 색채와 힘찬 터치를 엿볼 수 있으며 멕시코의 석유 국유화나 노동절과 같은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아서 다른 지역 혹은 한국의 일제 치하 미술보다 훨씬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의 멕시코 혁명, 그리고 혁명의 기운이 담긴 1920년대의 벽화 운동은 큐비즘(20세기 미술운동의 한 유파. 입체파라고도 한다. 편집자)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서유럽의 흐름과 달리 민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열망이 힘찬 터치와 강렬한 색채,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미지로 표현되었으며, 예술 작품으로 고고하게 미술관에 전시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호흡하는 생활공간 속에 벽화로 분출되었다. 멕시코에서 3대 벽화가로 추앙받는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벽화로 그려진 이들의 대표작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전시장에 벽화 사진이라도 게시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들의 색감과 터치를 조금은 맛볼 수 있다.


좌판에서 피놀레라고 불리는 말린 옥수수가루를 파는 여인을 화면에 꽉 차게 그려 넣은 리베라의 <피놀레를 파는 여인>에서는 문득 박수근의 여인상들이 스쳐지나간다. 서구의 백색 피부를 자랑하는 미녀가 아니라 우리네 옛 장터 어디에서고 만날 법한 아낙이 언뜻 무표정한 얼굴 속에 상념을 담은 채 화폭 가득 홀로 앉아있는 것이다. 혹은 풍만한 젖가슴을 늘어뜨린 채 자연 속에서 머리를 감는 <테완테펙의 목욕하는 사람>에서는 짙은 피부색의 여성이 자연과 더불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오로스코는 대영백과사전이 리베라와 더불어 ‘세계의 위대한 예술가 100인’중 한사람으로 꼽을 정도로 멕시코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벽화가이다.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자체에서는 그가 리베라보다 더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적은 오로스코는 전시된 작품 수가 3대 벽화가 중 가장 많으며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전시되고 있다. 오로스코의 방에 들어서서 잠시 시간을 보내면 그의 강렬한 표현적 터치를 느낄 수 있으며, 이를 거대한 벽화 규모로 상상해보면 실제 벽화에서 놀라운 에너지가 풍겨 나왔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정치가가 해골을 손에 들고 대중을 현혹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선동 정치가>에서는 멕시코 제일의 판화가라 불렸던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의 영향이 느껴지는데, 그는 학생 시절 늘 포사다의 작업실을 지나치면서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부모의 반대 속에 화가의 길을 잠시 접고 3년 동안 농업학교에 다녔으나 결국 폭발 사고로 인하여 왼손이 잘려 나가는 까닭에 결국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시케이로스의 두 작품도 꽤 인상적이어서 눈여겨 볼만하다. <노동절>에서는 선홍색 깃발을 사선으로 내리긋는 노동자와 이를 막는 경찰이 팽팽히 힘을 겨루고 있다. 군중의 모습으로 압도해오는 경찰과 홀로 맞서는 핏자국이 서린 노동자의 모습에서 1930년대 멕시코의 모습과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1945년 작 <석유 국유화>는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멕시코에서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면서 맛본 자랑스러움이 정유공장을 끌어안은 대지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변화했나? 라틴 아메리카 각국이 결국 미국의 지지를 받는 독재 정권의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서 석유나 가스, 전기 같은 자원이 민영화되거나 다국적 기업의 손에 들어갔고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역사의 시계가 다시 회전하면서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반대 흐름은 이제 남미 각국에서 자원 국유화의 흐름으로 표출되고 있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출신인 모랄레스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6년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가스 유전을 군대를 동원해 탈환하고 광산 국유화를 시작했다. 자원 부국인 중남미 각국은 땅에서 나는 자원을 순순히 내어놓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0년 전 그림이 현재 상황에 다시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다니! 여전히 민영화의 시도를 버리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시계는 어디에 맞춰 똑딱이는지…. 하지만 추상적인 여성으로 표현된 국가의 모습은 여성인 내게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남성 작가들은 종종 대지를 여성으로 표현하였다. 정복해야할 자연이나 보호해야할 자연으로서 어머니 여신. 한국의 민중미술에서도 제국주의나 독재 권력으로부터 수탈당하고 탄압받는 민중이 여성으로 상징되곤 했다. 피해자든 보호자든 여성 상징을 관성적으로 채택하는 그림은 여성 관람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여성화가 혹은 그림 속의 여성들


역사와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두 번째 방에서는 좀 더 개인적인 표현과 구체적인 중남미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야말로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게다가 대부분 남성 작가들이므로(위대한 거장은 역시 남자가 많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여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묘사된 여성의 모습 혹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나름의 생각거리를 건져 올려 보자.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거장’ 보테로의 여성 표현은 유쾌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비만이 가난의 지표이자 비난의 대상이 되는 시대, 보테로의 뚱뚱한 인물들, 특히 <브래지어 차는 여자>의 터질듯 한 뒷모습은 그 앞의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새근거리는 작은 남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 크기의 허풍에 압도되어 오히려 현실의 답답함을 펑 터트릴 수 있는 즐거운 그림이다. <흑인 성모 마리아>는 추상화된 성모자상인데, 마리아와 예수가 선명한 검은 색으로 표현되어(인류의 조상도 아프리카에서 왔다지 않은가) 신선한 자극을 준다. 테오필로 아야인이 그린 <죽은 아이>에서는 아이를 들어 올리는 어머니의 하늘을 향한 절규가 전시장 한 쪽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여성이 등장하지만 ‘여성의 눈에 거슬리는’ 그림들도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액자에 걸려 전시되고 있지만 정형화된 모습의 여성상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프란시스코 도사만테스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위로 솟은 용설란 이파리의 동물적 그늘 아래 <기다림>에 몸달아하는 눈 감고 누운 여자를 육감적으로 묘사해놓았다. 용설란과 가시 식물이 어찌나 여인을 탐하는지 민망할 정도이다.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가 그린 <바이아의 흑인 여인>이나 후안 비센테 파비아니의 <누드-흑인 누드>는 작가가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나름의 형식 실험과 표현을 탐구했는지는 몰라도 서유럽 그림에서 많이 등장하는 남성 작가들의 여성 누드가 진한 피부색을 덧입은 채 이국정취를 자극하는 듯 보인다. 고갱의 그림에서 타히티 원주민들이 진한 피부색으로 야성과 자연을 상징하며 서 있듯이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들도 남성 작가들과 남성 관객의 시선 앞에 맨 몸으로 서 있는 것 아닐까.


또 다른 여성의 모습은 없는가? 전시장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아이콘 역할을 하는 프리다 칼로야말로 20세기 여성의 세밀한 자기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전시장에는 칼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두텁게 이어진 진한 눈썹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을 만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칼로의 1920년대 초기작을 훑어볼 밖에. <미겔 N. 리라의 모습>은 초기작이지만 그녀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중앙에 인물을 배치하고 인물 주변에는 그와 관련된 여러 상징물을 들여놓는 방식이다. 좌측의 천사(대천사 미카엘은 미겔과 관련된다)와 머리 위의 리라를 통해 친구의 이름을 담고, 문학과 시에서 빌려온 다양한 상징물로 친구를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프리다는 이 그림이 “완전히 엉망이야…. 배경은 인위적이고 리라의 모습은 마분지를 오려놓은 것 같아.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구석은 작은 세부뿐이야.”라고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프리다와 더불어 20세기 초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인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아담과 이브>도 초현실주의와 개인주의라는 키워드 아래 전시장 한 쪽에 참하게 놓여있을 뿐이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레메디오스 바로나 레오노라 캐링턴과 같은 독특한 여성 초현실주의자의 작품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아부 그라이브>로 이어지는 라틴 미술


관객을 인도하는 바닥의 흰색 화살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전시 막바지로 갈수록 관람의 집중도가 떨어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지만 서유럽 미술계에서 지명도를 높였기에 ‘아 이들도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구나!’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 쿠바 출신의 위프레도 람, 칠레 출신의 로베르토 마타,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치오 폰타나,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저스 라파엘 소토의 작품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성과는 그다지 밀착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까닭인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오히려 처음 이름을 접한 베네수엘라의 엑토르 폴레오의 작품 변화가 더 흥미로웠다. 전시 포스터로 눈길을 끄는 작품 <위원들>이 부드러운 색채로 사람과 마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데 반해 몇 년 뒤 제작한 <쇠락>은 깨지고 부서진 빈 헬멧의 거대한 두상을 통해 극도로 세밀한 초현실주의풍을 보여준다.


지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 2005년 작 보테로의 <아부 그라이브>가 떠오른다. 그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에서 자행된 미군의 만행에 분노하여 50점의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미군 병사에게 얻어맞고, 개에게 위협당하고, 여자 속옷 차림으로 수치를 맛봐야 했던 이라크 병사들의 참혹한 모습이 예의 통통한 인물상으로 재구성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거장의 힘은 70세가 넘은 보테로의 <아부 그라이브>에서 더 생생하게 확인되는 것은 아닐까.


고궁의 흙길에 드리운 벚나무 그늘을 빠져나오며 라틴 아메리카 거장들의 작품을 예술로서 한가로이 완상하기에는 그곳의 변화하는 현실이 너무 역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지 않는 도시의 소음 속에 조용히 과거를 끌어안은 덕수궁, 대한문 너머로 보이는 시청 앞 광장에는 떠들썩한 시 주도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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