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01/19 1월의 막강 소비지수 (2)
  2. 2009/01/19 mb악법 바로보기 릴레이 카툰
  3. 2009/01/10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5)
  4. 2009/01/09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집 (2)
  5. 2009/01/09 자기계발서에 대한 생각
  6. 2009/01/09 Be Kind Rewind
  7. 2009/01/03 권정생님의 유언장 (2)
2009/01/19 20:29

1월의 막강 소비지수


집에 있는 많은 가구, 물건들이 사실 재활용품이거나 값싼 것들이다.
1월 대대적인 정리를 하면서 내 기준에서 비싼 책장을 마련했고..

1월 17일 5년간 쓰던 정든 노트북이 갑자기 전원이 나가면서
새로 노트북을 마련했다.
전에 쓰던 X-note....
무상수리로 메인보드 한 번 갈고 잘 쓰다가
지난 10월 갑자기 전원이 팍 나갔다... 하던 일이 있어 무척 놀랐는데
전원빼고 기다렸다 다시 키는 작동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안되어서 서비스를 받으러 갔더니 운명했다고 한다. ㅠㅠ.
아주 갑자기 어느날의 니키처럼 임무를 마치고 스러졌다.

18일 용산 전자랜드 직영매장에서 새 노트북을 구입했다.
서비스센터랑도 익숙해지고 해서(-.-:;) X-note 중에서 하나 고르려고 했는데
이리저리 보다가 Sony vaio VGN-FW23L을 구입했다.
디자인에 후한 점수를 준 녀석이다.
시원한 화면에 키감도 좋고 그다지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는 나로서는 나름 풍족하게 쓸 녀석같다.

그리고...
오늘 1월 19일 2년 반정도 쓰던 핸드폰을 교체했다.
그동안 쓰던 안테나달린 미니모토가 배터리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뭐 큰 고민없이 번호바꾸지 않고 기종도 모토로라를 유지하면서 저렴한 녀석으로 데려왔다.

휴......
소비를 몰아서 하는 기분이다.

책장, 노트북, 핸드폰
다 오래도록 잘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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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20:08

mb악법 바로보기 릴레이 카툰


만화가들이 매일매일 만화를 그려서 올린단다.
거참... 만화가들 정치교육까지 시키는 mb땜에...




오마이뉴스에 연재가 올라간단다.
1화: 집회시위법(일명 마스크법) by 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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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11:07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기이한 경험은 이때 이루어졌다. 불문학 강사였던 그는 네덜란드어를 몰랐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스승과 학생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학습했다. 스승은 그 자기학습의 조건이자 계기로만 존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단어들을 조합해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었고 철자법과 문법도 스스로 익혀 완성시켰다. “더구나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작가 수준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스승과 학생 사이의 나눔·분할을 거부하고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한겨레 책소개글: 지적 평등이 두려워 저들은 독학을 깔본다 _ 고명섭

자크 랑시에르...<감성의 분할>은 헉헉거리면서 냄새를 맡고 또 <호모 사케르>를 사다놓고 아직 제대로 읽지를 못해서 <무지한 스승>을 사서 보고 싶은 마음과 억누르는 마음이 서로 줄을 당기고 있다. 어쨌든 <무지한 스승> 소개글에서 내가 이해한 바는 '스승'과 '제자'라는 제도가 가정하는 지적 불평등이라는 원초적 조건이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제도가 배움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유아들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탐구에 비하면 학생들은 제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수동적인 자세를 체화하게 된다. 제도는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를 억누르고 너를 따라가라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 제도가 요구하는 최소의 자발성조차도 포기해버린 무기력한 학생들이 양산된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과도 일견 통하는 지점이 있어보인다.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지 인문학은 어림도 없어라는 세간의 생각을 뒤엎는 시도, '우리는 언제 최대로 영민함을 발휘하여 배우는가'라는 질문은 배움의 과정이 인내와 고통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획득과 그로인한 쾌감에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지 않을까.

오래전 나는 체제의 답답함과 일상의 반복이 주는 구속감이 미치도록 싫었고 그래서 틈만나면 어디론가 탈출하고자 했다. 그것은 영화이기도, 술이기도, 연애이기도, 여행이기도 했다. 그 시절, 유럽여행이라는 장기 목표를 세우고 프랑스어를 1년정도 공부했다. 잘 놀기 위해서 공부했다! 그것은 남들에게 혹은 나에게 공부라고 말하기는 좀 그런 것이었고 일종의 여행 준비였다. 내게는 아주 현실적인 또 실용적인 목표를 위한 행위였다. 그것이 주는 쾌락은 무엇이었나. 스스로가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 힘든 과정을 해내고 있다는 만족감. 훗날 여행지에서 소소한 소통의 도구로 쓰일 것이라는 기대감. 새로운 언어(인문학이든 언어든 어느 순간 '앎'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것도 세간의 관심에서 쇠락해가는 언어와 친근해진다는 소수자의 차별성이 주는 우월감까지... 그 때 나는 내가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제도 속에서 얻은 자신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무척 잘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원할 때 그것을 배울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을 얻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책을 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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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5:35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집

4개월 후면 이사온지 2년. 세월 참 빠르다.
1년쯤 지나고 나서는 2년이 되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겠다고 맘을 먹었더랬는데
2년이 코앞에 닥치니 마음이 변한다.

이 집에 이사오면서, 두고 두고 정리를 했다.
처음에는 대충 뭉뚱그려놓고 틈이 나면 한 쪽 벽을 정리하고
그러다 지난 가을, 몸상태가 불량해지면서 집이 그야말로 창고로 변신해갔다.
어디나 쌓여있는 것들, 책, 옷, ....
발디딜틈이 점점 좁아지는 형국, 기력이 나지 않아 그대로 버텼다.

지난 12월 동생이 안쓰는 청소기가 있다기에 들고 오면서부터
서서히 정리신이 강림했다.
드디어 1월 거금을 투자해(이집에서 최고가 물품) 방 한쪽벽을 다시 책장으로 도배했다.
1월 1일 부터 시작한 대청소가 드디어 어제 일단락이 되었다.
수많은 종이와 옷가지, 기타 등등의 짐을 버렸다.
"버리는 것이 정리하는 것이다!!"를 되뇌이면서.
집만 홀가분해 진게 아니다. 마음이 더 홀가분하다.
사실, 집에 짐을 많이 쌓아두고 싶지 않은데...
어쩌다보니 살림이 자꾸 늘고 있다.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거리는 집을 보면서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

그래서,
이토록 말끔히 정리된 집에서 2년 더 살기로 결정했다.
2007, 2008, 2009, 2010
휴.. 2011년에는 자연과 좀 더 가까운 집을 목표로 한다.
그 때까지 고고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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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3:52

자기계발서에 대한 생각

아주 가끔 보기도 하지만 거의 보지 않는 자기계발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언젠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철학자가 쓴 글의 제목이라는 것을
우리 상황에 빗대어서 학문계의 쓸데없는 권위에 대해 일침을 놓았던
김욕석 씨의 글을 읽게 되었다.

(김용석, '학술적인, 너무도 학술적인....')

그가 군대를 가서 만난 모토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한다"가 바로
마음먹기를 출발로 삼고 주어진 가르침을 믿고 따르기를 기본 포맷으로 하는
자기계발서와 비슷하다고 본 글인데,
공감하면서 읽었다.
사실 이런 모토가 바로 21세기 아이들을 길러내는 학교에서 아직도 최상위의 구호 아닌가....

자기계발서는 기본적으로 훈시를 벗어나기 힘들며
(종래의 계발서가 부정적 계명이 많았다면
 현대의 계발서는 긍정적 훈시가 많다!)
그에 따라 폭넓은 상상과 사고로 가는 길을 미리 좁혀놓게 마련이라는 점!!!

"인간의 뇌는 진화의 관성 때문에 어떤 사태에 대해 '숙고 체계'보다는 '반사 체계'를 더 잘 가동시킨다. "
강압적 가르침은 '숙고 체계'를 강화할 수 없다.
 '마음먹게 하는 책'보다 '생각하게 하는 책'을 들어라....

삶이 어려울 수록 위안을 원하고 스스로를 다지게 하는 단기 요법들에 손을 내밀게 되기 마련이다.
자기계발서, 종교, 명상 요법 등등....
하지만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꼭 공간적으로 가까워야 할 필요는 없다) 함께 난국을 헤쳐갈 지혜를 모으고 힘을 얻고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는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닐까.

김용석,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한다!', 한겨레신문,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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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3:21

Be Kind Rewind


신문을 바닥에 펼쳐놓고 느긋하게 이리 저리 읽어가는 쾌감이란..
이래서 난 완전 디지털세대라기 보다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중첩된 세대인듯.

신문에 난 영화소개평에 꽂혀서 개봉 당일 영화관람을 했다.
<수면의 과학>으로 나름 팬을 거느린 미셸 공드리 감독의 <비카인드리와인드>
도대체 무슨 제목인가 궁금해하면서
같이 갈 친구를 물색하다가
혼자 영화관람.
나 홀로 영화보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 '무예산 아날로그 특수효과'(한동원)의 재기가 번득이는 영화
하지만 서정성은 전작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행복하게 감독의 환타지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미셸 공드리

sweded된 영화 맛보기
http://www.bekindrewi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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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14:25

권정생님의 유언장

느긋하게 이곳저곳 블로깅을 하다가
언젠가 보았던 동화작가 권정생님의 유언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새해 벽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게 죽음이다.
난, 어떤 죽음을 맞게될까.
난, 어떤 유언장을 쓰게될까.
이참에 나도 유언장이나 한 번 써볼까.
새해가 시작할 즈음 한 번 해볼만한 일 아닐까.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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