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고수인 타짜를 연기한 백윤식,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나 차츰 주인공의 역할에 동화되었던 조승우, 언제나 약간 낯설지만 약간 오바한 듯한 목소리가 재미났던 김혜수. 허영만의 원작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한 발 떨어져서 볼까말까 망설였는데, 어느새 내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 재산을 거는 도박은 익숙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건 도박이라..
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예수의 수난. 그야말로 예수의 수난이었다. 현대의 성화라는 생각을 했다. 20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수난이 가진 생생함은 종교라는 커다란 제도 속에서 핏기를 잃었는데, 영화는 그 핏자국을 선연하게 되살리고 있었다. 느긋하게 볼 수 없는 영화. 예수가 받는 신체적 고통을 전가받아야 하는 영화. 참으로 처절하게 외부의 폭력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안는 예수. 그야말로 패션, 패시브한 고통의 전기이다.
두 영화를 보고서 든 생각. 현대는 고통이 표백되고 탈색된 시대이다. 죽음도 병원이라는 백색 공간에 갇혀서 아주 일부만이 노출된다. 그렇다면 그만큼 고통은 줄어들었는가. 잔인함은 줄어들었는가. 아니다 다른 형태로 우리는 그 잔인함과 폭력을 주사맞는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화 혹은 게임일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다가 오랫만에 케이블로 보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채 주어진 영화를 보아서 더 그럴까. 어쨌든 두 영화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무척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영화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영화만은 아니었다. 스크린을 넘어서 내 신체에 압박과 자극이 가해졌다. 프로그램이 꽉짜여진 일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미지로 그 탈출구를 찾고 이미지 속에서 폭력을 체감하고 이미지를 통해서 잔인함을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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