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30 18:31

겨울의 독서 - 바람의 눈이 되어


<바람의 눈이 되어>, 떼레사 까르데나스, 하정임 역, 다른, 2008

평생을 충실한 노예로 살아온 뻬르로 비에호, 노인의 졸음 속에서 슬프고 아름다운 삶의 기억들이 회상처럼 단편처럼 시처럼 지나간다. 노예의 삶을 몸소 살아온 자의 마지막......

그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에게 소중한 여인 베이라가 작은 여자 노예를 숨겨주었고, 그 여자 아이를 노인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노인은 머뭇거린다. 내가 왜? 라고... 뒤늦은 후회와 걱정으로 절뚝거리면서 소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 길을 나선다... 길을 나서기에는 어떤 나이도 늦지 않은 것이다.

뻬르로 비에호는 여자아이를 구하고 베이라를 구하고 감독관을 물리친후, 자유를 구하는 다른 노예를 찾아 정글로 들어선다.

"도망치는 노예들의 머리 위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산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로 하얗고, 나무 꼭대기에선 올빼미가 울었다. 덤불들 사이에선 부지런한 동물들이 벌써 하루를 시작했는지 부산했다. 구불거리며 끝없이 뻗어 있는 길에는 알 수 없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야생동물은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냄새를 맡느라 킁킁댔고, 새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의 그림자에 놀라 날아가 버렸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거미줄은 도망자의 얼굴 앞에서 여지없이 망가져 버렸다.

......

안개가 베이라의 모습을 삼켜 갔다. 뻬르로 비에호는 땅에 쓰러졌다.

......

문지기 뻬르로 비에호의 영혼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다 정글 어느 곳에 내려 앉았다. "


노예의 고단한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 앞에서 용기있게 동료의 삶을 구한 노인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단문으로 담담하게 옛날 이야기처럼 풀어간 소설이다.

별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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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16:28

겨울의 독서 - 까라마조프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동시에 어려움이 따른다.”


엄청난 분량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나서 떠오른 글귀다. (스피노자 에티카의 마지막!)


도스토예프스키는 세 권이라는 엄청난 분량 속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다룬다. 각기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세 아들의 만남 그리고 격정적인 만남과 사건들, 파국... 까라마조프들과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인 형상은 내게 지난 세기말의 러시아로의 여행을 선사한다.


어느 마을 - 소설 후반부에서 화자는 이 마을의 이름이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가축시장이라는 뜻)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 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장문의 글이 건축적으로 구축해놓은 리얼리티이다. 어떤 역사서가 당시의 러시아를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 부와 가난이 교차하고, 신앙과 무신론이 교차하며,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욕망과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경멸이, 새로운 사상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부에 대한 갈망과 낡은 것에 대한 조롱이, 이성과 욕망이 교차하는 세기말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사상을 외치면서도 낡은 계급제도에 몸과 마음이 묶여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초기 비용을 치러야만 까라마조프가 형제들의 생생한 사건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쉽게 다다른 것은 쉽게 사라진다.


소설은 반전의 요소를 담고 있고 다분히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초반 소설은 종교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장로 - 이 장로제는 또한 낡은 것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장로의 죽음과 더불어 예전의 신실한 존경심은 낡은 것이 되고 만다 - 의 죽음 앞에 초대받은 아버지와 세 아들. 신앙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사이의 대결은 겉보기에 단순한 선의 힘 - 조시마 장로와 일류샤 - 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들을 불러일으키는 악의 힘으로 마무리된다. 추앙받던 조시마 장로는 사체에서 나는 도를 넘는 역겨운 부패의 향기로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표를 양산한다. 그렇게 우리의 한 주인공 일류샤는 수도원을 떠나서 선과 악이 뒤엉킨 저자거리에 나서게 된다. 수도원 바깥의 저자거리는 선보다 악이, 원칙보다는 현실이 난무하는 곳이고, 사건은 점점 더 긴박해진다. 살의가 뿜어져 나오는 밤.

저자거리는 언제나 악이 들끓는 곳이다. 아버지의 악, 큰 아들의 악, 둘째 아들의 악, 어쩌면 그것은 온전히 악이 아니기에 혹은 사람들의 내면에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것들이기에, 단순히 바깥으로 쳐낼 수 없는 것이기에, 더 끈끈하게 들러붙어 있는 것이기에 숙고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엇이 더 큰 악인가라고 질문하는 것만 같다. 자식들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욕심쟁이 아버지가 악인가? 아니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야 할 유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치받는  큰 아들이, 아버지와 한 여자를 놓고 불타오르는 큰 아들이 악인가? 부친 살해의 욕망을 내놓고 드러내는 큰 아들이 악인가? 아니면 은밀하게 그것을 욕망하면서 영민하게 머리를 굴리는 둘째 아들이 악인가? 혹은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양심의 가책을 살펴볼 때, 그들은 어쩌면 선함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가 묘사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모순적인 인물로 묘사될 때조차 생생하다. 악하건 선하건 생생하다. 때로 격정에 차오르고 때로 조바심내며 때로 강하게 나서다가 속으로 무너지더라도 그들은 언제고 생생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여자들, 여자들은 그렇지가 않다. 이리저리 간섭하기 좋아하는 호흘라코바 부인도, 큰아들의 약혼자이자 둘째 아들의 애인인 카챠도, 아버지와 큰아들을 놓고 저울질하는 그루샤도 언제고 부차적인 인물들일 뿐이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중심에 놓인 소재들은 여자, 돈, 신앙일 것이다. 어쩌면 이 모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에서 중요한 고리들이었을게다. 그는 마흔이 넘어 25세 연하의 처녀와 결혼하였으며, 가난과 신분 콤플렉스 속에서 도박에 몰두하기도 하였고, 사회주의 사상에 발을 담갔다가 사형을 선고받고 8년간의 유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1859년 감옥에서 풀려나자 극우보수주의자 - 슬라브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와 신앙, 신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하고 순진한 유신론이 아니라 당대의 무신론과 경합하는 신앙, 혹은 악이라는 상수를 포괄하는 고차방정식의 해로서 신앙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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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8 21:10

저녁 강


<저녁 강>


얼음조각을 담고 투명하게 찰랑거리던 유리잔

부서졌다 고삐 풀린 마음 바닥에 흘러

온기를 찾아 낮은 곳으로 허물어진다

물살이 끝없이 부서졌는데 문득

바람이 잦아들고 거울처럼 맑은 물에

건너편 산그림자가 깃들었다

큰 산이 저렇게 물 위에 얇게 떠있다

새 한 마리 긴 목을 세운 채

젖은 둥치로 강물에 뿌리내린 나무

그 섬에 앉았다가

날개를 펼쳐 물 위를 아슬하게 휙 스친다


손목에 칼금이 그어지고 붉은 피가 서쪽 하늘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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