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8 21:10

저녁 강


<저녁 강>


얼음조각을 담고 투명하게 찰랑거리던 유리잔

부서졌다 고삐 풀린 마음 바닥에 흘러

온기를 찾아 낮은 곳으로 허물어진다

물살이 끝없이 부서졌는데 문득

바람이 잦아들고 거울처럼 맑은 물에

건너편 산그림자가 깃들었다

큰 산이 저렇게 물 위에 얇게 떠있다

새 한 마리 긴 목을 세운 채

젖은 둥치로 강물에 뿌리내린 나무

그 섬에 앉았다가

날개를 펼쳐 물 위를 아슬하게 휙 스친다


손목에 칼금이 그어지고 붉은 피가 서쪽 하늘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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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0:03

제대로 된 혁명


제대로 된 혁명(A Sane Revolution) / D. H. 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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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로 해직된 최혜원 도둑괭이 샘의 블로그에 어찌 어찌 갔다가
그녀의 우울과 분노에 공감하다가
기억하고 싶어서 이 글을 퍼온다.

http://robcat.tistory.co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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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19:48

주말에 본 영화 두 편


1. 타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고수인 타짜를 연기한 백윤식,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나 차츰 주인공의 역할에 동화되었던 조승우, 언제나 약간 낯설지만 약간 오바한 듯한 목소리가 재미났던 김혜수. 허영만의 원작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한 발 떨어져서 볼까말까 망설였는데, 어느새 내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 재산을 거는 도박은 익숙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건 도박이라..

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예수의 수난. 그야말로 예수의 수난이었다. 현대의 성화라는 생각을 했다. 20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수난이 가진 생생함은 종교라는 커다란 제도 속에서 핏기를 잃었는데, 영화는 그 핏자국을 선연하게 되살리고 있었다. 느긋하게 볼 수 없는 영화. 예수가 받는 신체적 고통을 전가받아야 하는 영화. 참으로 처절하게 외부의 폭력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안는 예수. 그야말로 패션, 패시브한 고통의 전기이다.

두 영화를 보고서 든 생각. 현대는 고통이 표백되고 탈색된 시대이다. 죽음도 병원이라는 백색 공간에 갇혀서 아주 일부만이 노출된다. 그렇다면 그만큼 고통은 줄어들었는가. 잔인함은 줄어들었는가. 아니다 다른 형태로 우리는 그 잔인함과 폭력을 주사맞는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화 혹은 게임일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다가 오랫만에 케이블로 보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채 주어진 영화를 보아서 더 그럴까. 어쨌든 두 영화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무척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영화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영화만은 아니었다. 스크린을 넘어서 내 신체에 압박과 자극이 가해졌다. 프로그램이 꽉짜여진 일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미지로 그 탈출구를 찾고 이미지 속에서 폭력을 체감하고 이미지를 통해서 잔인함을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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